節義公 諱 沆派(절의공 휘 항파)

 

 

자는 내융

시호는 절의

고려 성종10(991)년에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右拾遺 지제고 등을 거쳐 목종 12(1009)년에 좌산기상시 한림학사를 역임하고 사전에 올랐으며 이듬 해 정당문학에 들어 30여년간 폐지 되었던 팔관회를 부활케 하였으며 역신 김정양 등이 반역모의를 하는 것을 미리 알고 제충순과 더불어 현종을 보위에 오르게 하여 이를 막았다. 현종이 즉위하자 참지정사를 제수 하였으며 이어 내사시평장사에 올랐다.

현종 11년에 추충진절위사공신의 호를 받았으며 노환으로 와병에 이르자 왕이 직접 친히 찾아 문병을 하였다.

득종조에 정광에 추증되고 정종조에 이르러 문하 시중에 가증되었다.

 

장군공여인파(將軍公汝仁派)  학생공수인파(學生公秀仁派)   승지공숭파(承旨公崇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