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제우 (崔濟愚) 1824(순조24) ~ 1864(고종1)

 

아명은 복술

호는 수운, 수운재.

본래 몰락한 양반의 출신으로 한학을 배웠으며 16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한때 아내의 고향인 울산에 내려가

무명행상을 직업으로 전국의 각처를 돌아 다녔다.

1855(철종6)부터 양산군천성내원암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하여 1860(철종11)4월 천주 강림의 도를 깨닫고

동학을 창설 하였다.

이 무렵 중국에서는 태평천국의 난과 영불 연합군의 북경침입 사건이 있었고 그 여파로 우리 나라에 열강의

세력 침투가 시작되어 민족적인 위기를 조성하였다.

특히 서학의 전래는 사상과 풍속이 다른 우리 나라에 많은 물의를 일으키자 최제우의 머리에는 이들이 시대적

불안감이 반영되어 서학에 대항하는 민족고유의 신앙으로 새 종교를 창설하기에 이르렀다.

그 교리는 제병장생을 토대로 하여 동양적인 유불선의 정신을 참작 “인내천”, “천심 즉 인심”의 사상을 주장하여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지상천국의 현실적인 이상을 표현한 것이다.

동학은 구미 일본의 침략과 정부의 압제로 인하여 농민 사이에 급속히 파급되고 중대한 사회문제가 되었으며,

특히 충청, 전라, 경상도에 많이 전파하여 후일 동학란을 일으키는 주체가 되었다.

1863(철종14) 정부는 동학을 사교로 규정하고 최제우를 체포, 이듬해 3월 대구에서 흑세무민의 죄로 처형하였으나

1907(융희1)에  그의 죄가 용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