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가야산 해인사 결계장 기  (新羅迦耶山海印寺結界場記)

 

 

일찍이 듣자니, 대일산(大一山) 석씨는 귀중한 불멸의 법어로써 불교도들을 깨우치기를,

"큰 땅과 같은 계율을 생성하여 그 법을 보존하며 살아라."

라고 했으니 대개 마음과 업을 발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대경(大經)>에 이르기를

"대대로 이어 불문에 귀의하면 무릇좋은 인과응보(因果應報)를 가져오게 하는 것은 모두 가장 절승인 시라(尸羅)의 땅에 의거한다."

라고 했다. 그러니 땅의 이름이 서로 들어맞아야 하늘의 말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나라의 이름을 '시라'라고 한 것은 실로 바라제가 법을 일으킨 곳이며, 산을 '가야'라고 한 것은 석가모니가 도를 이룬 곳과 같다. 그러니 경내는 실수보다 훌륭하며 산봉우리는 오대산(五臺山)보다 높이 솟았다. 엄연히 이곳은 높은 지역으로 기이하며 맑고 시원하면서도 수려한 곳으로, 문에 해인(海印)이라고 써 붙였으니 구름은 정의를 보호하는 용처럼 뭉게뭉게 일어나고 깊은 산 신령을 기대었으니 바람은 계율을 지키는 범처럼 무섭도다. 경계 좋은 곳에서 삼보(三寶)를 일으켰으나 자리잡은 것은 일백 년이 안되었고, 절터가 워낙 험하였기 때문에 아주 작은 규모로 창건했다. 다시 짓기로 의견을 모으니 나라에서 확장하여 열 것을 허락하였다.

  드디어 건녕(乾寧) 4년 가을, 90일 동안 참선한 끝에 땅을 넓히고 사찰 건축하기를 기다렸다. 땅의 신은 마음으로 정성을 들이며, 하늘의 신도 기쁨 눈빛이었다. 하물며 산중의 좋은 경지가 정말 사해(四海) 밖의 복을 받는 도량이 될 것임에랴!

  그러나 부처님의 사원을 세우기는 쉬우나 도를 밝히기는 매우 어렵다. 만일 마음에는 있으나 거두어 들이지 않는다면 날개가 없이 날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육신이란 잎이 바람에 날리는 것과 같은데 산다는 것을 어떻게 보장하겠는가? 계를 지키는 것은 달이 바다에서 나오는 것과 달라서 이지러지고 반드시 둥그러지기는 어려운 것이다. 하물며 지금 불법은 쇠퇴하려하며, 마귀의 군대는 다투어 일어나고 있다. 볼수록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먼데, 염려가 되는 것은 연기가 심해지다가 불길이 타오르는 것이다. 도가(道家)의 교훈에,

"편안하여야 유지하기 쉽다."

라고 했고, 유가(儒家)의 글에 ,

"조심하지 않는 것을 사나운 것이라 이른다."

라고 했다. 억제하는 것이 오직 사람의 도리인데, 노력하지 않아서 되겠는가?

사방의 경계를 구획하여 모두 계산하기를 다음과 같이 하였다. 살펴보니 이른바 삼층의 집을 짓고 사층에 누를 올렸다. 훌륭하도다! 이야말로 산이 높으면 우러러보기 쉬운 이치이니, 바라건대 엎질러진 물도 다시 담을 수 있게 될지라. 곧 이 땅은 금강석처럼 굳으며 홀로 우뚝 선 귀한 사찰이로다. 위엄이 세속을 진정하니 곳간의 먼지는 곧 끊어질 것이요, 덕이 요물을 이겨내니 장각의 안개가 침노하지 못할 것이다.

또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을 재(齋)라 하며 근심을 막는 것을 계(戒)라고 한다. 유교에서도 이렇게 말하는데 불교에서 어찌 헛되이 있으리요? 잡귀가 방해하는 것을 피하려면 힘써 신의 가호(加護)를 구하라.

때는 당(唐)의 건녕(乾寧) 5년 정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