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로(崔承老) 927 ~ 989

 

고려시대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시호는 文貞으로 신라의 원보 은함의 아들이다.

12세에 논어를 읽는 것을 태조가 보고 원봉성 학사에 올렸다

학문에 열심하여 982년 왕명에 의해 시무책 28조를 올려 군제의 개편.과다한 불교행사 중지. 무역의 절제. 지방관제의 확정. 관복의 제정. 승려의 횡포엄금. 공역의 균등. 우상철폐. 신분제도의 확립 등 전반적인 면에 걸쳐 폐단의 시정 및 새로운 제도의 제정을 건의하여 고려왕조의 기초작업에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토호들의 횡포에 의한 세공 수납의 피해를 시정토록 하여 12목을 설치, 목사를 상주시켜 중앙집권적 체제를 갖추어갔다.

988년 수문하시중에 승진하고 청하후에 봉해졌다.

벼슬에 있는동안 임금에게 올린 청이 허락되지 않은 것이 없으며 63세로 사망하자 왕이 매우 슬퍼하여 태사(임금의 고문)를 추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