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언휘(崔彦撝) 868 ~ 944

 

초명은 愼之 또는 인연 시호는 文英이며 신라말 고려초의 문신 및 정치가로 서예와 문장이 뛰어났다

885년 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문과에 급제한 후 909년 귀국하여 執事省 侍郞을 지냈다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개국되자 935년 태자 사부가 되고 문한을 거쳐 원봉성대학사.한림원령,평장사를 지냈다

77세로 사망하자 시호와 함께 정광에 추증되었다.

글씨에는 낭원대사 오진탑비.법경대사자등지탑등이 있다

성주사의 낭혜화상 백월 보광탑비의 비문은 최치원이 짓고 글씨는 최언위가 섰다

이 비석의 글자가 4800인에 그 필법이 훌륭하고 그 모양이 고졸하면서도 기묘하다고 한다